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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
벌써 새해도 8일이 지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창한 계획은 없이 살았지만 올해도 역시 그럴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고 하루 하루 즐겁게 살자로 일단 큰 틀을 잡았다.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성탄대축일을 앞두고 판공성사도 드릴 겸 성당이 있는 홍대 앞으로 갔다. 전에 성사표를 받으러 잠깐 들르긴 했지만 성사에 미사까지 제대로 드린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 전대에 주임신부님이셨던 분께서 대림특강 차 오셔서 성사까지 주셨는데 하신 말씀들이 와닿았다. 고해성사 때 말씀하셨던 사죄경이나 보속도 그러려니와 강론 때 언급하셨던 ‘기술문명의 발달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와 ‘버릴 것을 버려야 비로소 예수님이 오실 곳이 생긴다’ 등의 말씀들이 미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도 가슴에 조용히 울림이 되는 것 같았다. 모처럼 점심식사도 맛난 샌드위치가 있는 런치 세트로 먹고 그곳의 별미인 스콘도 샀다. 다크 초코렛 덩어리와 호두가 듬뿍 들어가고 버터가 적게 들어가 느끼하지 않은 맛이 일품이다. 요즘 들어 ..
뽀로로가 왜 아기들에게 뽀느님 혹은 뽀통령인지 진짜로 알게 되었다. 주말에 친구가 딸을 데리고 왔는데 순하고 소심한 아이가 뽀로로가 운전하는 차 모형을 보더니 잠깐 망설이다 과감히 옆자리에 앉았다. 친구는 ‘이건 잠깐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나가던 또래 아이가 자기도 타고 싶어 기웃거리는데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친구 왈, ‘난 안고 뛸테니 넌 유모차를 끌어다오.’ 어르고 달래도 엉엉 울기까지 했지만 아랑곳 않고 친구는 딸을 앉고 냅다 뛰었다. 아기는 서럽게 울었고 나는 유모차를 밀며 같이 뒤를 쫓았다. 낮가림을 하는 어린 아이가 뽀로로 앞에서 샤방샤방 웃는 표정을 짓지 않나. 뽀로로 그만 보고 가자고 하니 ..
주말 아침마다 식사를 하고 온 식구가 도란도란 앉아 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생활의 달인‘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며 존경심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그런 달인들을 병원에서 찾았으니... 검사할 것이 있어 병원에 갔는데 채혈의 달인과 주사의 달인을 만났다. 혈액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채혈실로 갔더니 관록이 느껴지는 선생님이 채혈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작은 시험관 두 개 분량을 순식간에 뽑아내더라는 것이다. 살짝 놀래서 ‘벌써 끝난건가요?‘라고 여쭤봤더니 아주 여유있게 한 말씀, ‘여기서 더 길어지면 아파요!’ 하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환자의 채혈을 도맡았겠는가. 정맥에서 피를 뽑는 것이 그렇게 아픈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따끔함마저 느껴지지..
샤갈의 ‘비테프스크 위에서‘라는 작품이 있다. 착 가라앉고 암울한 느낌의 비테프스크를 배경으로 왼쪽 허공에 검정색 옷을 입은 남자가 떠 있다. 장욱진의 ‘밤과 노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어두워진 밤하늘 위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떠 있다. 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떠남을 암시하는 것이다. 샤갈 작품에서는 러시아 비테프스크를 떠남을 암시하고, 장욱진 작품에서는 삶을 떠나가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장욱진 화백의 유작은 ‘밤과 노인‘이다. 작품을 그린지 사흘 만에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두 작품을 보며 웬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갑자기 해봤다. 7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샤갈 전을 봤던 기억이 난다. ‘도시 위에서’ 가 다른 미술관으로 옮겨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봤는데 지금은 그때를 생각..
동네 뒷쪽에는 산을 끼고 가축을 키우는 축사들이 여러 곳 있다. 어쩌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차로 근처를 지나며 젖소나 황소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 구제역으로 온 나라에 매몰된 가축들 때문에 재앙 수준에 도달했는데 여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얼마 전 가족들과 차로 근처를 지났는데 소들로 가득했던 축사는 텅 비어 있었고 그 주위 땅들은 이상할 정도로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근처를 지나며 그냥 눈물이 났다. 게다가 축사 앞에 하천이 흐르는데 그 주변 땅도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이 정도가 되면 심각한 수준이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침출수 문제까지 나올 수 있다. 매몰 처리만이 방법이었을까. 죽어간 가축들이 불쌍했다. 언제까지 이 재앙이 이어질지 막막하다.
주님, 저에게 건강을 주시되 필요할 때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건강을 잘 보전케 해주소서. 저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고 선하고 맑은 것을 알아보게 해주소서. 악에 굴복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게 해주시며 사물을 대할 때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소서. 지루해하지 않고, 원망과 탄식과 부르짖음을 모르는 영혼을 주소서. 나 자신에 너무 집착하지 않게 해주시며 너무 걱정하지 않게 해주소서. 행복하게 살며 그 행복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저에게 유머와 이해하는 친절과 이웃을 포용하는 은혜를 주소서.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소식지에 실린 기도문이다. 소박해 보여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기도문에 잘 표현한 것 같다. 기도도 열심히 드려야 하는데...
“Happiness” from “You’re a Good Man, Charlie Brown!” 중에서. Here’s to you Charlie Brown! 음반에 나오는 곡이기도 하다. 이 음반에서 Al Jarreau의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음색이 은근히 끌려 좋아하게 되었다. 해석해 보면 행복은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 학교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 등등 소소한 것들을 말한다. 어찌 보면 작은 것에 많은 행복이 숨어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퇴근길에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다 이 곡에 손이 가게 되어 유튜브 검색을 해봤다. 피너츠 꼬마들이 부른 버전도 귀여워서 좋다. 벌써 새해도 5일이 지나갔다. 올해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열심히 궁리 중인데 작은 것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지나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겠다는 것도 추가해..
며칠 전 대전을 다녀왔다. 일과 관련되긴 했지만 어쨌든 대전을 간다는 사실에 설레였다. 태어나서 세살까지 살다 서울로 갔으니 대전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적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 갔던 걸 제외하면 대전에 갈 일은 많지 않았고, 가서도 할아버지댁이 있는 선화동 주변만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친척들과 같이 대전 엑스포를 구경했던 적도 있구나. 도착해서 워크샵 때문에 다른 개인 일정을 만들 수 없었지만 고향 하늘을 보고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애틋한 기분이었다. 마침 있는 곳이 학교 동기의 집과 가까운 곳이어서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얼굴도 보고 동기의 아이들도 보면 좋았을텐데 아쉬웠다. 이틀 동안 있었던 대덕 주변은 신도시로 깔끔하게 개발된 ..
오늘은 세례를 받은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주에 이어 서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서 교리를 가르치시던 수녀님께 인사를 드렸다. 벌써 1년이 지났냐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일이 있어 성당 사무실에 갔다 우연히 견진 대모님까지 뵙고 모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다 점심까지 사주셔서 맛나게 먹었다. 작년 2월 초에 쭈뼛거리며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서 예비자가 되어 6개월 동안 열심히 교리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는지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때가 일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로 바쁜 시기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리 수업을 들으며 즐거웠고 이어지는 교중미사에서 많은 평화를 얻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세례를 받은 성당이어서 그렇겠지만 내게는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