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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여행 _ (23) 6월 29일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본문

travel/2018 London & Paris

런던 여행 _ (23) 6월 29일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노란전차 2020. 1. 17. 00:37

일단 새 숙소를 나와서 다음 일정을 생각해봤다.

돼지코라 불리우는 어댑터가 없으니 일단 그걸 사야 하므로 역에 있는 부츠를 들렀다

런던의 마지막은 뮤지컬로 대미를 장식해야 하지 않나 싶어 표를 사러 레스터 스퀘어로 가기로 했다.

일정표가 없이 움직이다 보니 발길이 닿는대로 움직이는 편이었는데, 특히 이날은 가장 분주히 움직인 날로 기억한다.

 

숙소를 나오면 정문에서 맞은편으로 바로 보이는 영국도서관이다.

노란 간판에 있는 저 소녀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금새 의문이 풀렸다.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앨리스였다.

도서관 로고에 자국 고전 소설의 주인공 삽화를 넣는 저 센스란...

 

 

그리고 영국도서관 바로 옆에는 보기만 해도 멋진 건물이 하나 있다.

원래 기차역이었다던데 지금은 세인트 판크라스 르네상스 호텔이다.

항상 런던 여행을 생각하면서 가졌던 로망이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건너가기 전에 르네상스 호텔에서 투숙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뤄볼까 싶어 예약사이트를 조회해보니 가격이 좀 만만찮아 결국 풀만으로 두번째 숙소를 결정했다.

언젠가 런던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는 투숙할 수 있으려나?

 

 

피카디리 라인을 타고 환승없이 레스터 스퀘어 역에 도착해서 주변을 걸었다.

극장 밀집지역이어서 유동인구도 많은데다 극장들을 보니 우리나라 대학로가 생각났다.

 

 

레스터 스퀘어에 온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

런던하면 뮤지컬인데 떠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뮤지컬을 안 보고 간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아

어떤 뮤지컬을 볼까 잠시 고민하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드림걸즈'로 예매했다.

사실은 '라이온 킹'도 보고 싶었지만 예매를 빨리 해야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고

설혹 표가 남아 있다고 해도 비싼데다 좋지 않은 자리들이어서 선뜻 내키지 않았다.

티켓부스에 토요일 오후 공연으로 요청했더니 직원이 싼 자리 줄까 좋은 자리 줄까 묻는데

이건 망설일 필요도 없이 '좋은 자리로 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레스터 스퀘어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TKTS 부스다.

레스터 스퀘어 곳곳에 뮤지컬이나 연극 표를 파는 곳들이 있는데,

그래도 가장 믿을만한 곳은 런던극장연합(?)에서 한다는 이곳 같아서 망설임 없이 예매를 했다.

뮤지컬 표를 사는 방법으로 흔히 아침 일찍 데이시트를 사는 걸 많이 말하지만,

이 또한 복불복인지라 돈이 조금 더 들어가도 이 방법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를 사들고 걸어온 이곳은 광화문을 다니듯이 종종 드나들었던 트라팔가 광장이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 상영을 알려준 친구가 이번에는 거기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도 있더라고 알려줬는데,

공연 날짜를 보니 하필 내가 런던을 떠나는 날이었다.

게다가 정말 아쉬운 것이 이날 지휘자가 사이먼 래틀 경이었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첫인사 같은 공연같은데 이래저래 아쉽다.

트라팔가 광장 주변은 공연을 준비하느라 무대를 만들고 이리저리 분주했다.

 

트라팔가 광장까지 온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내셔널 갤러리 관람'이었다.

런던에 왔으니 내셔널 갤러리를 꼭 봐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으나

 정작 시간에 쫓겨 관람을 했던 기억이 나서 좀 아쉬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루벤스와 렘브란트와 베르메르 같은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들을 못봤다.

이제 런던을 떠날 일만 남았는데 내셔널 갤러리는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드디어 렘브란트의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

63세에 그린 자화상인 'Self Portrait at the Age of 63'이다.

살아 생전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화가로 1669년 작인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렘브란트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자화상 'Self Portrait at the Age of 34'이다.

63세 때 그린 자화상에는 불우하던 말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면

이 자화상에는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초상화 포즈를 취한 새파랗게 젊은 렘브란트가 있다.

  

 

렘브란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사스키아를 그린 작품이다.

'Saskia van Uylenburg in Arcadian Costume'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사스키아를 로마 신화에 나오는 봄의 여신 플로라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어디선가 본 기억으로 사스키아와의 결혼생활은 매우 행복했다고 하던데

그런 모습이 작품 속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루벤스의 작품도 물론 볼 수 있었다.

구약에 나오는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는 삼손이 데릴라의 무릎 위에서 잠든 사이에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장면이다.

삼손이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이었는가는 작품 속에서 섬세하게 묘사한 근육만으로도 알고도 남는다.

 

 

이것도 루벤스의 작품이다.

1597년 작 '패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으로,

패리스가 세명의 여신 중 하나에게 황금사과를 줘야 하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서양미술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라면 배경지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반 이상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데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나 오딧세이, 일리아드, 성경에 관한 지식은 있어야겠다는 것을 느낀다.

 

 

1670년 경 작품으로 Jacob van Walscapelle가 그린 'Flowers in a Glass Vase'이다.

내셔널 갤러리에는 플랑드르 회화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정물화도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이런 정물화도 단순히 꽃병의 꽃을 그린 것만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의미, 흔히 말하는 알레고리들이 숨어있다고 한다.

내셔널 갤러리 사이트에서 보니 이 작품은 밀의 줄기가 그려지고 어두운 배경을 통해 계절이 가을로 바뀌는 것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꽃과 곤충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한 네덜란드 정물화를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네덜란드 미술 감상은 계속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Hendrick Avercamp의 'A Winter Scene with Skaters near a Castle'인데,

당시 네덜란드의 북극 한파로 강과 운하가 얼어붙었던 때

동네주민들이 얼어버린 물 위에서 얼음을 지치는 장면을 참 섬세하게 그렸다.

당시에 봤을때 결코 큰 화면이 아니었음에도 빼곡히 채워진 풍경과 사람들로 작품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은 정말 춥지 않은데, 이러다 한파가 와도 얼마나 길게 갈까 싶다.

 

 

드디어 베르메르의 작품을 실제로 보는 순간이 왔다.

'A Young Woman seated at a Virginal'로 얼핏 보면 청초한 여인이 버지널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당시 음악은 젊은 남녀의 사랑과 유혹을 의미한다고 한다.

버지널 옆에 놓여있는 첼로는 여성의 몸을 상징한다고 하고 내셔널 갤러리 사이트의 작품해설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관능적인 느낌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는 베르메르 그림이 2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작품과 똑같은 크기로 그려진 'A Young Woman standing at a Virginal'이 있다.

이 작품도 당연히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후다닥 보느라 놓쳤다.

아마도 이건 다음에 와서 보라는 암시로 남겨놔야겠다.

런던은 이렇게 내게 다시 오라고 여러 방법으로 손짓을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Pieter de Hooch의 'The Courtyard of a House in Delft'이다.

'런던 미술관 산책'에도 소개된 작품인데, 그림에서 공간이 분할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였다.

왼쪽에는 아이의 엄마가 문쪽을 바라보며 서있고, 오른쪽에는 아이와 가정부가 있다.

그림을 볼때마다 느끼는데, 지식은 짧지만 네덜란드 미술이 이상하게 끌린다.

정교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느낌의 화풍들을 볼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이제 이탈리아 미술을 감상할 차례.

Piero di Cosimo의 'A Satyr mourning over a Nymph'로 시작한다.

님프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티로스의 모습이 사뭇 애잔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님프의 발 옆에 있는 갈색 개도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다.

 

 

파올로 우첼로의 작품은 전에 갔을 때 본 적이 있는데

용을 물리치는 성 조지의 그림으로, 그때 포스팅을 하면서 진짜 중요한 작품은 따로 있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바로 그 작품이 여기 있는 '산 로마노의 전투(The Battle of San Romano')이다.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원근법이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그려진 것임을 알았다.

산 로마노의 전투는 석 점의 그림이 있는데 내셔널 갤러리, 루브르 박물관,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은 갔다왔으나 보지 못했고, 우피치 미술관은 언젠가 꼭 가겠다는 생각 뿐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성 미카엘'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은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를 그린 작품 뿐 아니라 성인들을 그린 것도 소장되어 있다.

열혈사제를 보기 전에는 그냥 미카엘 성인을 그린거라고만 생각했지만,

열혈사제 이후에는 '김해일 신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미카엘 성인처럼 잘생긴 용모에 불의를 보면 못참는 성격이 딱이지 않는가.

게다가 그림에서 들고 있는 용의 머리와 미카엘 성인의 발 아래에 있는 용의 몸통은 는 구담구의 카르텔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조반니 벨리니의 '정원의 고뇌(Agony in the Garden)'는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유다의 배신과 앞으로의 수난을 알고 고뇌에 차서 기도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원래 작품감상을 위한 목록에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을 적어놨는데, 시간에 쫓겨 벨리니인지 만테냐인지도 모르고 봤던 것 같다.

만테냐는 벨리니의 매형이자 그림 스승인 관계로 이 작품도 만테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한다.

 

 

내셔널 갤러리의 층별 안내도.

세인즈버리 윙을 떠나면서 찍었던가 가물가물하다.

 

 

점점 폐장시간은 다가오고 두번에 걸친 내셔널 갤러리 방문에서 마지막으로 감상한 작품은 엘 그레코의 '성전에서의 추방'이다.

예수님이 성전에 있는 환전상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내쫓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사진은 촛점이 흐리게 나왔지만 예수님의 표정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이제 정말 아쉽지만 관람을 끝내야 할 시간이 왔다.

 

 

내셔널 갤러리를 나와 트라팔가 광장으로 걸어가다 백파이프로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를 발견하고는 한 컷.

 

 

런던에 왔는데 그래도 플랫 아이언에서 스테이크는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트라팔가 광장에서 코벤트 가든 방향에 있는 헨리에타 스트리트까지 슬슬 걸어가서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 물었더니

무려 2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의 말에 급좌절과 허탈함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어차피 테이트 모던에 갈 생각이었므로 근처에서 해결해도 무방할 것 같아서 일단 발길을 돌려본다.

 

 

전철을 타려고 레스터 스퀘어 쪽으로 걸어가다 피쉬 앤 칩스를 파는 음식점을 발견하고는 

영국에 왔는데 피쉬 앤 칩스는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 들어가 생선은 대구로 골라 주문했다.

아무 생각없이 음료수를 주문하지 않았으나 점점 느끼함이 올라와서 스프라이트를 주문해서 같이 먹었다.

사실 이런건 맥주와 먹어야 하는데 금주는 내 자신과 한 약속이므로 잘 지키고 싶었다.

 

 

피쉬 앤 칩스를 먹었던 식당.

구글 지도에 나온 평도 그런대로 좋았고 나쁜 말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피쉬 앤 칩스를 먹고 다시 서더크로 돌아가 테이트 모던 전망대를 구경하고는

우리나라 여자 여행자와 같은 방향이어서 같이 버스를 타고 내리니 이제사 야경이 보인다.

서로 여행 잘하라고 격려하고는 각자의 갈 길을 갔다.

 

 

숙소에 돌아와서 대충 정리하고 씻고 나와 티비를 켰더니 BBC에서 그레이엄 노튼 쇼를 한다.

그런데 저기 가운데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 있네 하며 보니 베네딕트 컴버배치 아닌가...

아마 당시에 '패트릭 멜로즈'를 촬영해서 홍보차 나온게 아닐까 혼자 생각을 했는데,

오른쪽에 있는 저 은발의 통통한 아저씨는 프렌즈의 조이로 나온 매트 르블랑이 아닌가...

이건 기념으로 남겨놓자 싶어 좀 엉뚱하지만 찍어봤다.

 

또 이렇게 런던에서의 하루가 간다.

다음날이면 런던에서 있을 날은 딱 하루가 남는 셈이다.

 

 

 

* 산 로마노의 전투 관련 참고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양정무 지음, 사회평론

 

* 내셔널 갤러리 웹사이트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 Fish and Chipper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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