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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dipity
런던 여행 _ (10) 6월 27일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해로즈 백화점 본문
항공권을 발권하고 언제 런던을 가는건가 손꼽아 기다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기에 온지 7일째다.
아마도 하루하루를 빡세게 다녔으면 분명히 하루는 몸살약을 먹고 숙소에서 두문불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무리하지 말고 산책하듯이 다니기. 아쉬우면 다시 오면 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다녔다.
그랬기에 남은 일정도 큰 무리 없이 잘 소화했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이 무사히 다녀온 것 같다.
이제 연식이 있어 빡세게 여행을 다니는 것은 어렵다.
꽃할배들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해서 일정이나 동선을 잡아 다녀야 할 때다.
왜 갑자기 이렇게 글이 이어졌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런던에 온지 꽤 시간이 흘렀다.
일어나자 마자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슬슬 고민을 한다.
이 고민은 식사를 하면서 계속 이어지다 끝날 때쯤, 혹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끝이 난다.
오랜만에 요거트를 먹었다.
이날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커피머신에서 블랙커피를 따르는데 웬 오지라퍼 아저씨가
'이건 블랙커피가 아니야. 에스프레소 샷 두번 누르고 먹으면 더 맛있어' 라고 귀띔을 하기에 말한대로 했다.
오지랖을 부린 이유가 있었다. 말대로 맛이 괜찮았다.
곳곳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맞닥뜨리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식당 한켠에는 책장 속에 책이 가득 꽂혀있다.
영국 대학교니까 당연히 영어책들이 많겠지 했는데, 여기서 우리나라 책을 발견했다.
바로 성문 기초영문법...
이걸 누가 여기다 꽂았을까 몹시도 궁금했다.
이 학교에서 어학연수 과정을 개설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학연수생일 수도 있고, 유학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빼서 판권지를 보니 1995년이었던 것 같은데 20년도 훌쩍 넘은 책이다.
책 주인 이름도 쓰여 있었는데 그분은 지금 무얼 하실지 궁금하다.
식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잠시 하늘을 감상했다.
오늘도 런던은 맑음이다.
이제 가고 싶었던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차례로 둘러볼 차례다.
일단 못갔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을 가보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이 있는 사우스 켄싱턴 역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물.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이었으면 좋겠지만 자연사 박물관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하러 가는지 아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을 따라 길을 걸으니 건널목이 보였고, 길 건너에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이 있다.
V&A는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의 약자이니 '제대로 온거구나' 혼자 생각했다.
몇년 전 일산에 살때 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열렸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전시회에 갔던 기억이 난다.
빅토리아 시대의 디자인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는 알함브라 궁전과
이슬람 미술 양식을 바탕으로 한 오웬 존스의 작품과 연구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런던에 가면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은 꼭 가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교과서에도 나왔던 간다라 불상.
4~5세기 경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된 작품이다.
헬레니즘 문화가 인도에 전파되면서 간다라 양식이 생겼고,
신라에까지 전파되어 석굴암 불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각품들이 모여있던 전시실.
19세기 후반 작품인 Alfred Drury의 'The Age of Innocence'다.
작품 제목을 보며 위노나 라이더의 리즈시절에 찍었던 같은 제목의 영화 '순수의 시대'가 떠올랐다.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는 로댕이 영국에 있을 때 창작한 작품들도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과 아래 4개 작품은 모두 로댕의 작품임.)
위의 작품은 'Le France'라고 한때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을 모델로 했지만
둘이 결별하면서 로댕의 여동생(Sister니까 여동생이나 누나일 듯)도 조각에 반영되어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군인 출신 정치가 George Wyndham의 흉상.
19세기 후반 작품인 'Cupid and Psyche'
19세기 후반 작품인 'The Fallen Angel'
19세기 후반 작품인 'St John the Baptist'
세례자 요한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로댕의 청동 조각 작품 중에 두번째로 큰 작품이라고 한다.
로댕 작품 외에도 꽤 많은 조각 작품들을 보며 사진도 엄청나게 찍었지만
일일이 다 올리는 것은 좀 무리 같아서 지극히 일부만 추려서 올렸다.
아무래도 미술작품 외에도 장식미술, 건축, 보석, 의상 등까지 포함하는 곳이다 보니
눈이 호강하는 것 같아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제 일본관으로 넘어가본다.
여성들이 기모노에 착용했다는 액세서리들이라고 본 기억이 난다.
좀 적어둘걸...
사무라이가 입었던 갑옷.
일본관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그에 반해 한국관은 규모가 매우 작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V&A의 경우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컬렉션이 많이 빈약한 현실이다.
중국관으로 넘어가서 본 명나라 때 만들었다는 양 조각상.
아무래도 12지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어느 시대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무덤 벽화도 있었는데, 설마 이걸 통째로 뜯어서 전시했을까 궁금해진다.
영국 박물관은 그런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게다가 약탈품들이지 않은가.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약탈된 전시품이 포로같다'는 말이 공감이 가기도 한다.
그래도 고대 문명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유 작가님처럼 보이콧은 차마 못하겠고...
중국관을 돌아보고 나니 기념품 매장이 보여 잠깐 구경했다.
내셔널 갤러리와 영국 박물관에서 에코백을 산 전적이 있어 사진 속의 에코백을 살까 말까 망설였다.
박물관 전경 프린트가 멋졌지만 가로폭이 좀 넓어서 망설이다 구경만 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영국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품 매장들은 엄청난 개미지옥 같다.
사서 들고 오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아 지름신을 누르느라 고생 좀 했다면 사람들이 웃을까?
지름신을 겨우 눌러 달래며 이슬람 중동관으로 갔다.
중동은 '이슬람 문화권이잖아' 라며 혼자 생각하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모습이 선명하게 수놓인 제의를 봤다.
설명을 보니 17세기 이란에서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부님이 미사 때 착용한 제의라고 한다.
이란이 처음부터 엄격한 이슬람 국가는 아니었다는 걸 알았지만 '중동=이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17세기 경 천체 관측을 하는데 쓰인 도구들.
이슬람 문명은 수학 뿐 아니라 천문학, 의학 등과 같은 다른 과학분야도 발달해서 서구문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동관을 지나 인도관으로 와서 본 그림들.
섬세한 꽃문양과 힌두교 최대의 축제라는 디왈리를 축하하는 여인들, 사진으로 엄청 많이 본 타지마할 전경이다.
그림만 봤을 리는 없고 물론 조각품도 봤다.
20세기 초반에 만든 '카마데누'(소원을 들어주는 소)라는 목각상이다.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소에 공작의 꼬리와 날개가 달린 상서로운 이 동물은 힌두교 축제 때 쓰였다고 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소 앞에서 내 소원을 빌었던가 가물가물하다.
드디어 아시아관을 벗어나 유럽 쪽으로 이동하여 라파엘로 관에 도착했다.
저 계단으로 올라가면 15~16세기 영국관이 나온다.
15세기 경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만든 성 조지(게르기우스) 제단화다.
실제로 봤을 때 화려하고 웅장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최상단에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두 예언자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성모님과 양 옆의 복음사가 요한, 루카, 마르코, 마태오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성 조지와 관련된 그림들이고,
가장 아래단에는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고뇌부터 부활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옛날에 리비아에서 인간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용을 무찔렀다는 성 조지의 일화이고,
이분은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도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이 어부에게 내린 기적을 그린 16세기 초반 작품이다.
여기에 소장된 작품들은 라파엘로가 태피스트리 제작을 위해 그린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1865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이 왕실 임대를 통해 바티칸에서 들여와 전시하는 것이다.
위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태피스트리 작품.
같은 시기에 그린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오로 성인.
바오로 성인 하면 성당에서 바오로 희년을 맞아 전 신자가 미사 전 성경에서 바오로 서간을 낭독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신자가 아니었고 교리를 배울 때였는데 시종일관 존대말로 쓰여져 있던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읽으며 괜히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교리를 배울 때의 열정이 어디로 갔나 싶게 점점 나이롱 신자가 되어 간다.
이러면 안되는데...
라파엘로관에서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16세기 영국관이 나온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안내도를 사서 들고 갔던 전시관들을 볼펜으로 표시하며 다녔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인가'를 속으로 되뇌이며 안내도를 펼쳐보고 있는데,
웬 직원 분이 불현듯 나타나 '여기는 1500년대 영국관이에요.
벽면에 전시실 번호와 이름으로 보시면 되요. 그리고 화장실은 내려가면 왼쪽에 있어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친절한 직원 분 덕분에 화장실 위치까지 알았다.
그리고 초상화의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다.
마고 로비가 엘리자베스 1세로, 시얼샤 로넌이 메리 스튜어트로 나오는 영화는 언제 개봉할지 궁금하다.
셰익스피어가 희곡 '십이야'에서도 언급했다는 16세기 경 웨어라는 지방의 여관에서 사용했다는 침대.
화려한데다 크기까지 하다. 튜더 시대에는 이런 침대를 썼구나 혼자 생각하며 구경했다.
16세기에 만들었다는 클라비 오르간이다.
위에는 건반이 있고 아래에는 파이프가 있어 오르간의 기능을 한다고 한다.
한스 홀베인이 그린 토마스 모어 일가의 큰 초상화를 축소판으로 그린 작품이다.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과 앤 볼린과의 결혼을 반대하여 사형에 처해졌다.
살아 생전 유능한 법률가였고 불의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 법률가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세례명이라는 것을 알고 그분이 살아온 삶과 얼추 맞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태피스트리로 만든 지도인데 16세기 작품이다.
나는 이 시대 사람도 아니었고 게다가 동양인인데 왜 태피스트리를 보는 것이 좋을까.
아마도 직조된 장면들이 정교하고 아름다워서겠지...
이제 18세기로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다.
아예 거실이나 방을 통째로 재현한 전시공간도 있었다.
화려한 금빛 레이스가 달린 조끼와 자켓.
평상복보다는 파티복 느낌이 난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하는 왕궁의 불꽃놀이(Royal Firework) 안내도.
이 행사를 위해 헨델이 작곡한 모음곡이 바로 같은 이름의 왕궁의 불꽃놀이다.
그냥 봐도 헨델이 떠올랐다.
영국의 자랑 셰익스피어 흉상도 보고...
18세기에 만들어진 The Badminton Bed는 중국 탑에서 영향을 받았고,
한동안 이 시기에 여성들의 방이 중국풍의 가구로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배드민턴 침대로 불리는 이유는 베드민턴 하우스라는 저택에 있던데서 유래한다.
2014년에 1차대전을 기념하며 런던탑 해자에 설치한 양귀비꽃이다.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졌고 80여만 송이가 런던탑 해자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런던탑 해자 주변으로 세라믹 양귀비를 모두 심은 모습.
촘촘이 심은 80여만 송이는 1차대전에 희생된 영국군 숫자와 일치한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열심히 작품을 감상하고 뭐라도 먹으며 잠시 쉬어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쨍한 날씨에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로 곳곳이 붐볐다.
영국에 왔는데 홍차와 스콘은 먹어야지 싶어 야외 카페에서 주문한 것들.
클로티드 크림과 버터에 딸기잼까지 모두 한 세트라 풍족하게 탄수화물과 당섭취까지 일거양득을 했다.
우리나라는 탕수육을 놓고 부먹이냐 찍먹이냐 논쟁을 벌이지만,
영국판 부먹 찍먹 논쟁은 스콘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을 먼저 바르냐 잼부터 먼저 바르냐라고...
박물관 중정 곳곳에 예쁘게 피어있던 수국들.
이제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르네상스 관으로 입장.
르네상스 시대 때 성당에 장식된 제단화나 내부 장식품, 조각등이 한데 모여있다.
15세기 경 피렌체의 성당 제단화로 만들어진 'Assumption(성모 승천)'이다.
파란 배경은 하늘을 의미하는 것 같고, 성모님 주위를 호위하는 천사들이 성모승천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성모승천이겠거니 했는데 제목을 보니 진짜 그랬다.
갑자기 피렌체 하니까 언제쯤 나는 피렌체를 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오늘 알쓸신잡은 잡학박사들이 피렌체로 넘어가는데 얼마나 볼만할지 기대된다.
르네상스 시대 조각품들을 주로 모아놓은 The Weston Cast Court로 이동...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 '다비드'를 석고조각으로 복제한 작품이다.
실제 다비드는 피렌체에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언젠가 피렌체에 가면 진품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15세기 경 이탈리아 루카 지방에서 만든 무덤을 석고 조각으로 복제한 작품.
무덤의 주인은 루카 지방 유력가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옷의 주름이며 얼굴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15세기 경에 만든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태피스트리.
V&A에서 여러 편의 태피스트리를 봤지만 트로이 전쟁이 가장 규모가 컸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 태피스트리 앞에서도 정신줄을 놓고 봤던 기억이 난다.
전생에 15~17세기 경 유럽 사람이었을까...
미국 유리 공예가 데일 치훌리의 대작 'V&A Rotunda Chandelier'다.
유리 하나 하나를 다 불어 만들었을 생각만 해도 대단한데, 5일동안 6명이 동원되어 설치를 끝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기괴하지만 몽환적이기도 하고 19세기 때 지어진 이 건물과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현대 유리 공예 전시실에 치훌리 작품들이 몇 점 있다고 하던데 못봐서 좀 아쉽다.
다른 전시실로 연결되는 통로 쪽에서 본 르네상스 전시실.
건축 전시실도 잠깐 구경...
국회의사당에 있는 두 개의 탑 모형이다.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며 늘 봤던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 나무 모형.
지나기만 하면서 정작 내부는 못봐서 아쉬운 곳이기도 하다.
다시 가면 그때는 내부도 봐야지 하는 생각만 해본다.
페이스북이었는지 인스타그램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V&A 계정에서 치훌리의 샹들리에를 보고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이렇게 특이한 작품이 있다니' 하며...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고 반가워서 찍고 찍고 또 찍어서 올려본다.
철제공예품들이 전시된 곳도 지나고...
18세기에 만든 풍향계라고 한다.
어제 본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에서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이
푸가 사는 숲에서 발견한 풍향계가 생각났다.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고풍스런 열쇠와 울타리들까지도 하나하나 전시품이다.
달리 세계 최고의 장식미술 박물관일까 싶다.
저런 열쇠를 아직도 쓸까, 저런 울타리가 아직도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있다는 것을 나중에 파리에 도착해서 알게 된다.
V&A에서 정말 보고 싶었던 전시품들 중에서 단연코 의상을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작은 아씨들'의 여주인공들이 입었을 것 같은 드레스도 있다.
18세기에 만든 드레스. 이것도 모양에 따라 명칭이 다른 것 같다.
이런 형태의 드레스는 Mantua라고 한다.
흰 가발을 쓰고 저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부채질을 했을 옛날 귀족 아가씨의 모습이 연상된다.
19세기에 만든 드레스들.
영드 '빅토리아'에서 많이 본 스타일인데 아마도 그 당시 의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20세기로 넘어와 1920년대 드레스들.
챙이 좁은 모자에 가느다랗게 그린 눈썹, 그리고 짧고 간결한 드레스를 입은 누군가가 생각난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봤던 푸이의 황후 완용이 떠올랐다.
1950년대 여성 정장들.
현대 서양 복식 중에서 1950년대 스타일을 참 좋아한다.
선이 간결하면서도 스커트가 풍성해서 우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하체비만인 내게는 이런 디자인이 더 잘 어울린다.
고등학교 가정 교과서에서 봤던 디올의 뉴 룩으로 소개한 실크 수트를 소장하고 있다는데 전시 중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브닝 드레스들.
세번째로 보이는 드레스는 더 크라운에서 마거릿 공주가 비슷한 스타일로 입고 나왔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 마거릿 공주가 입었던 드레스는 아니고 어떤 영화에서 쓰인 의상이라고 한다.
방대한 전시품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75% 정도는 관람한 것 같다.
보면서 눈이 정말 즐거웠고 영화나 책에서나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여타 박물관과 달리 디자인과 건축 등과 같은 응용예술을 주로 다루기에
당시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제 박물관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나가기 전에 화장실을 잠깐 들릴까 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 파사드에 있는 석상의 주인공은 알버트 공일까. 그냥 궁금해진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구글지도를 봤더니 주변에 해로즈 백화점이 있었다.
게다가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어 이동하기에도 딱 좋았다.
일단 해로즈 백화점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갔다.
해로즈 백화점으로 가는 길에 봤던 거리 풍경.
흔한 런던 주택가 사진. 어제 봤던 곰돌이 푸 영화를 연상시킨다.
어느새 훌쩍 어른이 되어 푸 따위는 잊어버린 크리스토퍼 로빈과 카드놀이 좀 하자며 접근하는 옆집 아저씨가 생각난다.
근처 웨이트로즈에서 생수 한병을 사들고...
우리나라는 에비앙 한 병에 1,600원인데 여기는 천원도 채 되지 않아 가끔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숙소 근처에서 테스코, 세인즈버리. 막스 앤 스펜서까지는 봤는데 웨이트로즈는 런던에 온지 7일만에 처음 봤다.
웨이트로즈는 거의 부자동네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는 부촌임이 분명하다.
해로즈 백화점 근처 나이트브리지는 부촌이니까...
그리고 해로즈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냥 봐도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데다 부내가 물씬 풍긴다.
길을 건너 해로즈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외관에는 유니언 잭이 나부끼지만 내부에는 군데군데 이집트 양식의 조각상들이 있다.
아무래도 소유주가 한때 이집트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아나 왕세자비의 연인이었던 도디 알 파예드가 해로즈 백화점 소유주의 아들이었다.
V&A에서 못갔던 화장실을 다녀오고 넘사벽급의 명품관도 스치듯이 지나 지하 식품관에 갔다.
식품관도 만만치 않게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그리고 여기는 홍차가 유명하지 않던가?
마음이 저기압이면 고기 앞으로 가라는데 내 마음은 고기압이어서 저기 있는 홍차 앞으로 향했다.
해로즈에서 자체 제작해서 판매하는 홍차 코너로 와서 정신줄을 놓고 구경하며 뭘 살까 궁리했다.
전에 봤던 '철학으로 구매하는 홍차 가이드'에서 소개한 해로즈 홍차들 중에
조지언 블렌드가 눈에 보여 잠시 망설이다 구입했다.
망설인 이유라면 사고 싶은 홍차들은 좀 많지만 나의 짐가방은 한정되어 있어서...
이제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해서 임무를 완수한 요원마냥 해로즈 백화점을 나왔다.
이제 진짜 어디로 갈까 슬슬 고민이 되었다.
맞은편 COS 매장에서 잠시 윈도우 쇼핑을 하며 고민을 하다 내린 결론.
'내셔널 갤러리는 언제 가나. 지금이라도 얼른 가자!'
이제 30년 전부터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떤 그림을 보러 내셔널 갤러리로 향한다.
그리고...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서 꽤 많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에 다 올리면 방대할 것 같아 추리고 추려 올렸다.
추린다고 추렸는데도 생각보다 양이 많아 스크롤의 압박이 좀 있는 편이다.
수많은 전시품들을 보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흥미롭게 봤지만 유럽의 역사나 문화를 좀 더 알았더라면
몇배는 더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웹사이트
*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해로즈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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