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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헤레베헤 지휘 모차르트 "레퀴엠" & 교향곡 41번 "주피터" 공연 - LG 아트센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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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헤레베헤 지휘 모차르트 "레퀴엠" & 교향곡 41번 "주피터" 공연 - LG 아트센터

노란전차 2013. 6. 2. 21:41



 LG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필립 헤레베헤 지휘,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레퀴엠"과 교향곡 41번 "주피터" 공연에 다녀왔다. 6월 1일 토요일 공연이었다.


필립 헤레베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월간으로 나오는 "라 뮤지카" 잡지였다.

표지 인물이었는데, 은발에 금테 안경을 쓴 소박하지만 웬지 모르게 이지적인 모습과 헤레베헤라는 성이 인상적였다.

가끔 BBC Radio 3에서 나오는 바흐나 그 외 곡들 중에서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곡들을 듣기도 했다.

또한 유튜브에서 헤레베헤 지휘 곡들을 찾아 듣기도 했고, 관련 음반을 사모으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관련 글들을 찾아 읽으며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다.


3월 초순 쯤 어디선가 헤레베헤가 6월에 내한한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예매를 했다.

특히 유명한 모차르트 레퀴엠에 41번 교향곡이 레퍼토리고, 게다가 본인이 발탁한 소프라노 임선혜까지

한자리에서 공연을 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글로벌 성공시대를 보고 난 후 고음악 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소프라노 임선혜에게도 많은 관심이 생기는 시점이기도 했다.

큰 맘 먹고 VIP석이나 R석도 생각했는데, 이미 좋은 자리들이 빠져나간 시점이어서 2층 5열 중간 자리를 잡았다.

자리가 혹시 나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정 중앙에서 무대를 조망하는 위치여서 탁월한 선택이었구나 싶었다.


클래식 음악을 요즘 많이 들어도 곡들을 분석적으로 듣는 경지는 아니어서 전문적인 리뷰는 전문가의 몫으로 돌릴까 한다.

그저 내게는 감동적이었고 멋진 연주들이었다. 교향곡 41번 "주피터"는 그 시대에 실제로 연주했던 원전악기와

소편성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어 오밀조밀한 느낌이 들었다. 대편성에서 느껴지던 1악장의 힘과 박력보다 

탄탄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원전연주가 귀에 와닿았고 몰입하기에도 좋았다. 

1악장보다 더 좋았던 4악장은 바로크 음악의 대위법을 도입해서 짜임새가 탄탄하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이제 1악장보다 4악장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레퀴엠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가면을 쓰고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하는 부분부터, 

죽음에 이르는 장면까지 레퀴엠의 곡들이 시종일관 흘러나왔던 기억이 난다.

몇몇 곡은 영화에서 들어 귀에 익었지만 막상 전곡을 제대로 들은 것은 공연 표를 예매하고

예습 삼아 음반을 사서 듣기 시작하면서였다.

유명한 Lacrimosa(눈물과 한탄의 날)보다 부속가 처음에 나오는 Dies irae(진노의 날, 운명의 날)에서 느껴지는

긴박감과 짜임새를 좋아했는데, 이번 연주에서도 유감없이 그 긴박감을 멋지게 드러냈다.

소프라노 임선혜를 비롯한 솔리스트들과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단원 모두 아름다운 화음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소프라노 임선혜에게는 감회가 새로운 자리였을 것 같다. 자신을 발탁한 지휘자와 한자리에서 같이 공연을 했으니 말이다.


앵콜 곡도 좋았다.

1부 주피터를 연주하고 수많은 박수소리 끝에 'for you'라고 말하며 3악장을 앵콜로 연주했고,

레퀴엠이 끝나고 일부는 기립박수까지 보내며 환호하자 역시 'for you'를 말하며 

'Ave Verum Corpus(성체 안에 계신 예수)'를 연주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이 가톨릭 전례 상으로 예수성심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이다.

그래서 앵콜 곡으로 선정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몇몇 생각.


사인회가 없어 한편으로 아쉬웠다.

7년 전에는 별도의 사인회가 없었는데 몇몇 용감한 팬들이 사인을 요청했다는 일화도 있었지만

토요일 공연에는 그런 이벤트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공연은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들까지 나와서 부럽기까지 하다.

사인에 대비해 레퀴엠 음반을 깜박하고 챙기지 않아 현장에서 급하게 바흐의 모테트 음반을 샀지만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만의 합창곡으로 구성되었는데 반주 없이 순수하고 정제된 음색을 원없이 들을 수 있다.


헤레베헤 옹은 유머러스한 분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악장이 임선혜에게 볼에 입맞춤을 하는 것을 보고 꾸짖는 듯한 손짓을 보내는 모습이나,

관객들의 연이은 환호와 박수에 기뻐하며 미소를 머금고 앵콜 전 'for you'라고 말하는 뉘앙스가 인자하기도 했다.

2층 자리는 표정을 제대로 보기 어려워 좀 아쉽긴 했다.


2층 관람석에서 영화감독 박찬욱 님을 봤다.

긴가민가 했는데 SNS나 블로그 등에서 같은 이야기를 많이 보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실제로 봤는데 휙 지나가서 잘 몰랐다. 알고 보니 박찬욱 감독이었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과 즐거운 대화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연주회장 밖에서 인증샷을 셀카로 찍는데 찍어주겠다고 어느 여자분이 흔쾌히 말씀하시기에

각자의 카메라로 서로를 찍어줬다. 그리고 그분을 LG아트센터 페이스북 계정에서 마주쳤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전철역까지 가는 짧은 길에 이런저런 음악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가끔 모르는 사람들과 무장해제 상태로 나누는 대화는 즐겁다.


상반기 마지막 달의 첫날 그토록 오매불망하던 필립 헤레베헤 옹의 지휘 연주를 직접 접할 수 있어 좋았고,

정제된 순수함이 느껴지는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오밀조밀한 주피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다.


두서없이 발로 썼지만 그때를 기억하고 싶어 끄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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