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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포일러 있슴)

노란전차 2005. 6. 20. 22:38


토요일 밤에 EBS에서 방영했던 "엘리자베스"를 봤다.

전에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어 오랜만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

사실 어렸을 적에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물어보면
두말 않고 대답했던 사람 중 하나가 엘리자베스 1세이다.
영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나라를 부강하게
키운 국왕이 그것도 여자라는 사실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에 정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여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이 영화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여왕에 오른 엘리자베스가
'The Virgin Queen'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공주 시절, 그리고 여왕에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의
엘리자베스는 우아하고 연인과 열정적인 사랑을 하던
여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집권하던 시기는
잉글랜드의 재정이 파탄 직전에까지 갔고,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첨예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은
호시탐탐 영국을 노렸으며 엘리자베스에게 정략결혼의 손을
뻗쳐왔다.

이러한 난국들을 헤쳐나가는 가운데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실은 유부남이었으며 급기야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여왕은 신하 월싱엄의 도움으로
반대파들을 하나 둘씩 숙청해 나가고 평생 독신으로 영국을
통치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역광으로 한 장면 처리이다.
눈이 부실만큼 하얀 역광은 여왕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 장면은 두 번 나오는데, 처음 나오는 역광은 왕실의 사신들이
메리 여왕의 승하를 알리고 엘리자베스에게 새로운 왕으로서의
예를 갖추던 장면과 마지막에 진정한 여왕으로 거듭나는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반대파를 제거한 엘리자베스가 길디 긴 머리를
남김없이 자르고 얼굴과 손에 창백하게 분을 발라
화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초상화에서 보는 모습이다.)
그 전의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긴 머리에 화사한 옷을 즐겨 입던
우아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자르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했던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았고 창백하게
화장을 하는 것은 보통 여성의 삶보다는 성녀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는 암시 같아서 의미심장했다.
게다가 그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다.
여성으로서만 살았던 삶과 결별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엘리자베스 역을 맡았던 케이트 블란쉐는 역사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우아하고 지적이지만 강한 느낌으로 여왕 역을
잘 소화해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은 정말 우리가 볼 수 있는
초상화 속 여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여러 위기에 몰린 여왕을 도와 반대파 제거를 돕는
월싱엄 역의 제프리 러쉬는 "샤인"에서 연기했던 괴짜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혹하지만
충성스러운 신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를 보면서 월싱엄 역에 집중해서 봤다.
정말 저 사람이 제프리 러쉬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화려한 의상과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 의미심장한 장면들로
보는 눈도 즐거웠지만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영화였다. 여성의 삶에 관한 생각과 영국의 역사 등등..
동생 노트북을 포맷하느라 제대로 집중해서 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DVD로 소장을 할지 고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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