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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대로 가보다

노란전차 2007. 3. 14. 23:19
어제 일이 있어 나갔다가 전에 살던 동네를 가봤다.

지금은 전철역이 생겨서 나름 역세권이라지만,
그래도 변두리 동네의 모습은 여전했다.
조금씩 고층 아파트들이 곳곳에 들어서긴 했지만
몇년 전에 왔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역에서 내려 일단 발길 닿는대로 가보기로 했다.

먼저 어렸을 적에 다녔던 유치원을 가봤다.
어렸을 적에는 정문에서 언덕 위에 있는 유치원 건물까지
걸어가는 길이 참 길게 느껴졌다. 입구에 있는 성모상에
꼬박꼬박 성호를 긋고 짤막한 기도를 하고 올라갔던
그 길을 나이가 훌쩍 먹어서 다시 올라가보니
그다지 길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은 유치원 앞뜰에
한복을 입고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부지에서 나름대로
수녀원과 유치원, 문화센터, 복지시설을 알뜰하게
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서 전에 살던 아파트를 가봤다.
역시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점점 오래된 흔적이
느껴졌고 전에 비해 주차라인이 늘어난 정도랄까.
아파트 맞은 편에 있는 근린공원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랐다.
아마도 푸른 잎이 돋아나면 참 예쁠 것 같았다.

공원을 끼고 아파트 뒷쪽을 가봤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항상 지나던 길인데
이제는 공원이 생기고 거기에 운동기구까지 생겨서
사람들이 운동도 하고 여가도 보내는 곳이 되었다.
학교 가는 길 쪽의 서점, 문구점들도 여전했다.
학교를 가볼까 했는데 그냥 여기서 만족했다.
갔으면 지난 주 무한도전 생각도 나고 재밌을 것 같긴 한데..

계속 발길 닿는대로 걷다 보니 시장 가는 길로
연결되는 고갯길이 나왔다. 모든 것이 다듬어진
일산에서 살다보니 오래되고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골목길이 참 그리웠다. 어떤 가게에서 내놓은
낡은 의자와 테이블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면서
왠지 모를 정겨움을 느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고층 아파트가 생기겠다. 이제 조금씩 여기도
고밀도화가 되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시장 가는 길이 보인다.
큰 길 쪽으로 건너서 버스를 타고 가려다
시장 구경이 하고 싶어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시장으로 바로 가는 길 말고 샛길을 통해서 가봤다.
얼마만에 보는 재래시장의 모습인지...
본일산에도 재래시장이 있고 가끔 일산장이 서지만
이 시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세 개의 시장이
길게 쭉 뻗어있어 엄마랑 장보러 갔다가 이런 저런
구경을 했던 곳이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가림막을
만들어 놓아서 좀 불편했는데 그래도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걸어봤다. 입구가 정비된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시장 구경을 대충 하고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려는데
예전에 있던 육교가 사라졌다. 대신 건널목이 생겨서
한층 수월하게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길을 건너니
전에 다니던 안과 간판이 보인다. '그 의사 선생님 지금도
안녕하실까. 참 좋은 분이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버스 노선을 보니 전에 있던 광화문으로 가는 노선이
없어졌다, 다른 노선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광화문 노선이 없어 차선책으로 신촌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대 앞을 갔다. 이대 미고에서 치즈케익을
먹자는 생각과 함께...

이대 미고를 찾아갔는데 왠걸 공사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무슨 커피 전문점이 새로 생기나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었는데 신촌 기차역 방향으로 걷다 보니 DCX 자리에
확장 이전했다. 드디어 발견했다는 기쁨에 일단 자리를 잡고
나의 완소 메뉴인 치즈케익과 브랜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메뉴는 나의 항우울제요, 그 이상이다.
카운터에 보니 무료 베이킹 클래스 신청서가 있길래
일단 가져왔다. 그런데 클래스를 하는 날이 할머니 기일이다.
당첨되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겠다.

맛난 치즈케익에 커피까지 마시니 이래저래 기분이 좋았다.
우연히 발이 닿아 갔던 옛 동네는 아련하게 느껴졌다.
내 20년의 세월이 있던 곳, 어린 시절의 기억이 숨쉬는 곳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정겨움이 느껴졌다.
동네에서 시장까지 걸으면서 이때만은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살던 동네를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열심히 돌아다닌 덕인지 피곤해서 잠도 솔솔 잘 왔다.
다음이라도 미고 이대점은 다시 가보려고 한다.
어줍잖은 카페보다 분위기도 괜찮고 공간도 넓어져서
오래 앉아있기도 좋을 것 같다. 이러니 또 치즈케익이
먹고 싶어진다. 또 가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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